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총 11편의 단편들이 연작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품으로 1980년대 서울의 변두리 원미동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갈등을 에피소드로 한데 뭉친 피카레스크식 소설이다. 각 편마다 에피소드가 다르지만 주제가 이어져 있으며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변화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서로 적이 되었다가 표면적, 일시적으로 화합하기도 하며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과 애환, 갈등과 이해를 다루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원미동은 도시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지역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이다. 그들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여파로 인해 주변부로 밀려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원미동은 이러한 소외된 계층의 고통과 불안을 상징하는 공간인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장치 활용 되었다. 작품 속 인물 대부분은 생계 문제로 고통받고 있으며, 급변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투쟁은 사회적 공공성보다는 개인의 생존과 이익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와 공공선의 충돌을 통해 정의가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일용할 양식」 : 줄거리
원미동 23통 5반에는 김포 쌀 상회라는 가게가 있다. 이 가게는 연탄과 쌀만을 팔다가 어느 날부터 슈퍼라는 간판을 달고 가게를 확장하며 각종 야채와 과일, 반찬 재료들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착실하고 부지런히 살아온 경호네의 성공을 함께 축하해 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경호네 김포 쌀 상회와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형제 슈퍼를 운영하는 23통 5반의 반장 노릇을 하고 있는 김반장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김반장의 형제 슈퍼는 원래 야채와 과일, 반찬 재료 등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호네가 슈퍼로 확장하며 품목을 추가하자 김반장도 쌀과 연탄을 들여놓기 시작하자 동네사람들은 어느 집에서 물건을 사야 할지 망설이게 되고 그러는 사이 두 가계의 경쟁이 시작된다. 손님을 더 모으기 위해 경쟁적으로 할인을 하고 덤을 얹어주더니 급기야는 남는 것 없을 만큼의 가격 할인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 와중에 김포 슈퍼와 형제 슈퍼 중간에 새로운 싱싱 청과물이 생기고 두 가게의 갈등을 전혀 모르고 들어온 싱싱 청과물에도 야채와 과일, 반찬 재료들을 팔기 시작한다. 동네의 복잡한 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가게를 연 싱싱 청과물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더욱 난처한 상황에 이르고 만다. 싱싱 청과물의 등장에 위기를 느낀 김포 슈퍼와 형제 슈퍼는 잠시 동안 동맹을 맺어 싱싱 청과물에 맞서기 위해 노력한다. 두 슈퍼는 가격 담합을 맺기도 하고 서로의 가게를 홍보주기도 하면서 싱싱 청과물을 견제한다. 이에 싱싱 청과물은 이름에 걸맞게 과일만 팔기로 하지만 김포 슈퍼와 형제 슈퍼의 공세가 그치지 않고 어느 날 싱싱 청과물과 김포 슈퍼의 경호 아버지와 형제 슈퍼의 김반장 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만다. 결국 싱싱 청과물은 한 달 만에 문을 닫게 되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이득은 잊어버린 채 경호네와 김반장이 독하다며 수군댄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이견다툼으로 마을 사람들 간에 불화는 깊어졌고 동네 사람들은 서먹한 사이가 된다. 그렇게 겨울 내내 동네를 혼란스럽게 했던 사건이 일단락되고 경호네와 김반장의 갈등이 정리되며 마을에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네에 새로운 전파상이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며 써니 전자를 운영하는 시내 엄마와 새로운 전파상과의 새로운 갈등이 암시되면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공공성
작품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공공성과의 갈등을 경험한다. 이 갈등은 때로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떻게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두 슈퍼 사이의 고객확보 전쟁이 심화되자 아낙네들은 그것을 유용하게 이용하려 들었다. 이는 현대인의 이기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으로 조그만 판매 경쟁이 감정적인 경쟁 심리상태에 이르러 동네 사람들이 이해타산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는 가난해도 서로 정을 나누면서 돕고 살았으나 자신의 실리 앞에서는 이웃도 정의도 없이 각박해져 가는 현대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두 슈퍼의 본질적인 갈등의 원인이 생존이라는 점에서 가격 경쟁을 할수록 두 상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싱싱 청과물의 개점으로 잠시나마 두 슈퍼는 표면적으로 화해를 하지만 생존 경쟁 중에 벌어진 휴전 협정은 잠시 자신들이 살기 위해 맺는 임시방편일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면서 잠깐의 동맹을 맺는 것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합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먹고살기 위해서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치열한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 중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할까? 사회적 공정성을 우선가치로 여기는 원칙과 질서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아무리 눈앞에 이익이 보이더라도 그 이익이 사회적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한다.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행위나 고객의 개인 정보를 팔아넘기는 행위나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과도한 이윤을 남기는 행위 등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 공정성이 조화롭게 자리 잡기 위해서 사회적 공정성의 유지보다 더 큰 이익은 없다는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책임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 사회 정의 구현
이렇게 작가는 원미동 사람들을 통해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공공성 사이의 갈등이 어떻게 정의의 문제로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선이 무시되거나 훼손된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공공의 이익은 조화롭게 연결되어야 한다. 더불어 개인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선택이 과연 정의로운 것이지, 공공선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을 잊지 않으며 현대 사회의 정의 구현을 위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공공성을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정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