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이 일정한 부를 축적하게 되자,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being)에 대한 사회·문화적 관심이 모아졌다. 웰빙은 1980년 슬로푸드(slow-food) 운동을 시작으로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 사이에서 나타난 새로운 삶의 문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이후 다양한 형태로 웰빙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의식주 생활 전반에만 나타나 웰빙은 곧 소비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최근에는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추구하려는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코드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웰빙의 핵심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되고,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잘 사는 것은 결국 잘 죽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최근에는 웰빙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웰다잉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넘어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을 준비할 권리를 찾게 해 준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데 이는 환자의 질병에 대한 극복의지를 저하시킨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웰다잉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웰다잉의 기본 개념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평온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웰다잉은 건강한 상태에서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죽음이 다가오는 시점에 환자가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웰다인의 핵심이다.
안락사의 국가별 허용
웰다잉과 연장선상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안락사(euthanasia)이다. 안락사는 생존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에 따라 구분할 때는 약물 등을 사용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환자의 동의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때는 직접적인 동의가 있을 경우에 시행하는 자발적 안락사와 환자의 직접적인 동의가 없음에도 가족의 요우 혹은 국가의 요구에 의해 시행하는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안락사에 대한 법적 허용 여부는 국가마다 크게 다르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하였으며 엄격한 조건 하에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의사 결정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평가한 후 결정해야 한다. 벨기에는 2002년 네덜란드에 이어 안락사 합법화를 허용했다. 이 나라에서는 만성적이고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의료진은 이에 대한 요청을 신중히 검토한 후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다. 2014년에는 어린이까지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룩셈부르크는 2009년부터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하였으며 안락사 허용 조건은 네덜란드와 유사하고 환자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일 때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명확히 합법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력 자살이라는 개념을 통해 일정 조건 하에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안락사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의료진은 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는 존엄사(dignitas)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안락사에 대한 법적 상황이 다르다. 오리건주가 1997년 처음으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이후, 워싱턴주, 버몬트주,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안락사 법은 주로 말기 환자에게 허용되며, 환자는 스스로 약물을 복용해 생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안락사 찬반 논란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기 환자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존엄을 잃지 않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도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살아가는 것이 더 고통을 주는 경우라면 환자의 소망을 존중해 고통을 덜어 주는 것도 의료진의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 환자의 연명치료를 지켜보는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경제적, 정신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들어가는 치료 자원을 회생 가능한 환자들에게 돌리고, 뇌사자의 장기기증 등으로 더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며, 안락사가 오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안락사를 강요받거나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 부담만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해 생명경시풍조 현상을 가져올 수 있으며 장기매매나 금전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악용되거나, 재산을 노려 생명을 빼앗는 등 다양한 범죄로 발전할 수 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의사가 소생 가능성에 대한 판단 오류를 일으킬 수 있으며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인간의 생명은 신의 영역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은 신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입장이다.
삶과 죽음의 균형
웰빙과 웰다잉, 그리고 안락사는 모두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화두이다. 안락사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이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나라마다 안락사의 법적, 윤리적 기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지만, 개인의 고통을 줄이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